해안선 coast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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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은이야기

모처럼..

해안선. 2014. 1. 26. 18:15

 

모처럼..

 

 

모처럼 쉬는 일요일의 아침부터 아니 캄캄한 새벽부터 잠을 깨고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눕고 식탁에 놓여있는 머그컵에 담겨져있는 물을 마시는것이 이제는 습관처럼 여겨지는 낯설지 않은 일상의 풍경이다. 중년들은 다 그럴까? 라는 물음을 다시 방안의 두툼한 이불을 둘러쓰고 누우면서 중얼거리는 입가에는 아직 남아있는 보릿차 물기가 혀를 내밀게 한다.

 

언제나 아침이 되어 내방 창문에 빛이 스며들까 하는 생각으로 하나 둘 셋을 세면서 잠을 청하지만 그리 쉽게 잠들지 않은 시간에 여기저기 서성대며 돌아다니는 이놈의 잡념이 수면의 발목을 잡는다. 잠으로 가는 길목에서 잡념과 힘든 싸움과 전쟁을 수도 없이 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꿈들이 수도 없이 바뀌어 진다. 그 짧은 꿈의 시간에 나는 공간이동을 수도 없이 한다. 과거로부터 잉태된 인연들의 끈을 가진 인간들이 수도 없이 장소를 만들고 나타나 들락거린다. 침묵과 수다를 반복하면서 그 꿈의 시간에 얼마나 여행을 다녔고 얼마나 사람을 만났는지 잠에서 깨어난 몸뚱아리에 붙은 오른손의 손가락은 하나 둘씩 반쯤으로 접어간다.

 

창문에 희미한 빛이 반쯤 떠진 내 눈안으로 들어올때 나는 몸을 일으켜 세워 누구와 어디서 나는 꿈에 있었는지도 조차 희미한 기억을 떠올리며 방문을 열고 바라다 보이는 거실의 벽시계를 보는것이 맨먼저 하는일이다. 아침 9시가 조금 넘었다. 좀 출출한 생각이 들어 고개를 주방쪽으로 돌려 시선을 움직인다. 쉬는날 아침에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화려한 밥상보다는 신김치를 올려 놓은 소반상의 라면이다.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는 가족들을 보면서 나는 배를 쓰다듬으며 이네 방으로 다시 들어온다.

 

컴퓨터 본체 위에 올려 놓은 아직 다 읽지 못한 계간 문학지를 처음부터 대충 훑어 본다. 많은 작가들이 등장해 있어 어떤 글들이 어떤 말들이 실려 있는지 대충 제목을 읽으며 넘겨 간다. 11시가 넘어서 아내는 커다란 냄비에 라면 5개를 끓여 식구가 셋인 우리 가족의 3인분이라며 TV앞에 소반상을 차려 놓고 김장으로 부터 좀 익은 신 무우김치와 배추김치 두가지와 함께 라면을 올려 놓고 내방과 아들방을 두드린다. 식사하라는 말에 문을 열고 거실로 나서니 구수한 냄새가 쪼그라든 뱃속을 자극한다. 이걸 먹으면 종일 더부룩 할텐데 하면서도 일단을 먹고 보자는 식이다.

 

배가 부른 그 시간에 내 컴퓨터에 독한 바이러스 한놈이 치고 들어와 이제는 수도 없이 방송에서 본 그래서 누구든 쉽게 알수 있는, 더구나 컴퓨터로 금융거래 인터넷 뱅킹이라고는 하지도 않는 우리집 컴퓨터에 정부금융기관을 사칭하는 로고(금융감독원)를 올려놓고 그것도 모자라 포털 싸이트에 로그인이 안되게 만들어 놓았다.  자기 방에서 신나게 자신의 컴퓨터를 즐기고 있는 아들한테 얘기 했더니 내 컴퓨터를 오물딱 조물딱 마우스를 움직이고 자판기를 두들기며 한참이나 씨름을 하면서 이번에는 오기로 고친다고 하더니 정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 사이 나는 옆에서 구경하다가 라면에 배부른 탓인지 졸음이 슬슬 다가와 이때다 싶어서 아들에게 내 컴퓨터를 맏겨 놓고 전기장판으로 따스해진 방바닥에 몸을 눕혀 늘어지게 잠을 잤다. 한 두어시간쯤 잤나 일어나 아들에게 고맙다고 커피를 대접하고 덤으로 아내에게 연한 블랙 커피를 선사하는것도 잊지 않는 일요일 오후에 나는 제법 빠르고 안정적인 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렸다. 이제는 컴퓨터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백신도 잘 듣는다. 몇번이고 검사하여 그많은 바이러스와 악성코드에 감염된 컴퓨터를 치료 하였다. 그래서 그런가? 이제 컴퓨터는 제법 기능이 활발하다는 느낌이라서 그런지 자판기가 좀 부드럽다.

 

그럭 저럭 오후의 시계는 달리고 달려 저녁으로 다가 간다. 거실에 누워 있는 아내에게 오늘 저녁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라는 물음에 동네 할인 마트 전단지를 갖다 달라고 한다. 그걸보면 무언가 생각나는게 있는지...

 

내일 부터는 일이 좀 가벼울것 같다. 3일 일을 하면 나흘간의 설연휴가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주 6일의 힘든일을 하는 나에게 이번 설에는 푹 쉬는 시간으로 빠져 들기로 했다. 밀린 어학 방송도 틈틈히 보고 듣고 미처 못읽었던 계간 문학지도 읽고 발췌해서 블로그에 올릴 예정이다. 나에게 부를 만들어 줄 경제적인 물질은 빈약하기 짝이 없지만 내 뇌의 여가에 남아 있는 용량에 조금씩 채울수 있는 든든함이 있기에 더욱 소중한 존재의 의미를 생각한다. 일을 하고 쉬는 시간에는 무엇이든 하나 둘씩 틈틈히 지성을 챙겨가는 나만의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 쉬는날 저녁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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