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선 coast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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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選 6

광부 / 신진련

시인 신진련의 詩.. 광부 / 신진련 보수동 헌 책방에는 숨겨진 언어를 찾는 광부가 있다. 낡고 오래된 책의 갱도에서 그는 채굴되지 않은 낱말을 찾아낼 수 있을까 광맥을 이루며 꽂혀있는 책들을 짚는다 채광을 끝낸, 버려진 책의 그늘에서 사금을 모으듯 책장을 넘긴다 먼저 다녀간 누군가 그어놓은 밑줄처럼 반짝이는 언어를 캐기 위해 더 깊은 동굴로 들어가는 광부 막장에 다다르면 그도 질식되어가는 걸음을 멈추고 바위에 숨겨진 활자를 찾을 수 있을까 탄차가 멈춘 보수동 헌책방 손가락을 괭이 삼아 책을 파헤치는 광부의 등이 햇빛으로 젖어있다 계간 《불교와 문학》 2020년 여름호에서 ( 블로그에서 옮긴 글 ) ....................................................... 지난번..

詩選 2022.11.24

목마와 숙녀..

목마와 숙녀 박인환 시 박인희 낭독- 목마와 숙녀(1974) 김기웅 작곡(배경음악)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

詩選 2022.06.07

길 물어보기 / 문정희

길 물어보기 / 문정희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 하지만 가는 길 좀 가르쳐 주었으면 좋겠다 비어 있는 것이 알차다고 하지만 그런 말 하는 사람일수록 어쩐지 복잡했다 벗은 나무를 예찬하지 말라 풀잎같은 이름 하나라도 더 달고 싶어 조바심하는 저 신록들을 보아라 잊혀지는 것이 두려워 심지어 산자락 죽은 돌에다 허공을 새겨놓은 시인도 있다 묻노니 처음이란 고향 집 같은 것일까 나는 그곳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 버렸다 나의 집은 어느 풀잎 속에 있는지 아니면 어느 돌 속에 있는지 갈수록 알 수 없는 일 늘어만 간다 (퍼옴)

詩選 2022.01.29

시선(詩選)에서..

시선(詩選)에서.. 수수 / 이동백 아버지 기일 앞둔 그믐날 수수밭 스친다. 바람도 없는데 수수 흔들린다 시나브로 어둑해진 하산길 어디 먼 데 꽹과리 소리 가슴까지 차오르는 샛강 건널 때 두근두근 들려오는 어머니 다듬이 소리 새 이불 한 채 지어 두고 어머니 절에 가신다 수수알이 흔들린다 바람도 없는데 어머니 수수보다 더 흔들리신다 이동백 : 1996년 로 등단, 시집 《수평선에 입맞추다》《대구선》 출처 : 시인시대 2021 여름 21 / 창간 5주년 기념호 219쪽 ............................................................................................................................ 이번 주말엔 서점..

詩選 2021.09.04

시인 신진련의 詩

시인 신진련의 詩 3편 오늘을 경매하다 길은 늘 바닷가에서 끊어지고 달리는 발자국들이 모이는 자갈치 새벽은 푸른 가슴을 열고 뭍에 오른 파도 소리를 잠재운다 경매사가 종을 울리는 공판장 지친 트롤선이 마악 부려놓은 생선 비린내를 어루만지는 손가락이 있다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기지개 켜듯 피어나는 꽃잎들 자갈치 꽃이 핀다 손가락이 만든 꽃잎은 바다의 기호 접은 수첩 뒤에서 바다의 주소를 옮겨 적는 동안 뭍에 내린 물 냄새가 옷을 갈아입는다 가장 짜릿한 향기를 위해 손가락 끝에서 제 몸을 터뜨리는 물꽃들 접었다 폈다 새로운 기호로 태어나는 자갈치 꽃봉오리마다 아침이 만개하고 있다 소금꽃 여자 바다를 입고 살았습니다 종일 아가미를 떼느라 휘어진 손가락 마디에는 따개비 같은 상처가 굳은살로 박혀있습니다 몸에 ..

詩選 2021.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