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선 coast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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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신호

서막

해안선. 2021. 7. 18. 06:41

서막

 

띵동하는 스마트폰의 알림소리가 들렸다. 책을 정리하다 뒷주머니에 있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메시지 폴더에 빨간 동그라미 안 글씨 1자가 붙어있어 클릭을 했다. 부고 소식이었다. 장필상이 덕포리 옥구댁 부고소식을 받은 건 서점 직원들과 점심 식사 후 였다. 갑자기 멍 한 느낌이 들어 밖을 나갔다. 하늘을 보니 금새 눈이라도 내릴 좀 검으스레 한 잿빛하늘 이었다.  
 
우선 양아버지인 평지사 장주지 한테 전화를 했다. 그래야 될것 같았고 그게 순서라고 생각했다. 신호음이 그리 길게 가지 않아 소리가 들렸다. 좀 머뭇거리며 잠시 몇초 동안은 숨을 죽여 생각에 잠겼다. 
 
"바쁠텐데 웬일이냐"
"네.. 사실은 생모 옥구댁께서 세상을 떠나셨다고.."
"그래? 다녀오거라. 니 피붙이 형제들도 볼겸 지금 아니면 언제 거길 가긋냐. 맘 편히 다녀오거라" 
 
다시 철도청에서 일하는 친구 김에게 전화를 하면서 순간 호남선에서 전라선으로 바꾸었다. 아무래도 전주를 잠깐 둘러 가는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에 출발하여 저녁에 도착하는 시간에 맞추어 새마을호 열찰 예매를 했다. 김이 열차 예매 카톡을 보내왔다. 간단히 땡큐로만 답했다. 열차가 용산역을 빠져 나가면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점점 더 내릴 기세였다. 열차 찻창으로 보이는 눈발들이 사선으로 날리고 있어 더욱 열차의 속도감을 증폭 시켰다.  
 
생부 천병선의 장례식때 다녀왔으니까 덕포리를 다녀온지 얼마나 됐을까? 어언 십칠년쯤 된것 같았다. 창가를 보면서 잠필상은 또다시 옛 시절을 회상하는,  아니 회상에 잠겼다. 

 

(1)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줄지어 신작로를 따라 집으로 가는 길에 버스가 정차하기라도 하면 우르르 몰려가 한번만 태워 달라고 애원을 했다. 그러나 버스 차장은 냉정하게 뿌리치고, 다시 달리는 버스는 신작로 먼지를 뿌옇게 내뿜고 아이들은 욕설을 퍼 부우면서 다시 길을 걷는다. 누군가 아카시아 잎줄기를 따서 한번씩 돌아가면서 손가락 튕기기로 잎파리 따기를 한다. 지는 아이는 그 손가락 튕기기로 이마를 맞는다. 아파도 어쩔수 없는 일이다. 

 

동네엔 대밭이라고 하는 경사진 큰 밭이 있는데 반공일이면 책보자기를 마루에 던져놓고 우루루 몰려 들었다. 삼삼오오 모여서 노는 아이들은 대부분 여자와 남자가 구분 되어있다. 여자애 하나가 남자아이들 하는 비석치기에 끼어들어 결승전까지 치루고 있는데 얄궂은 남자애 하나가 훼방을 놓는다. 여자애가 비겁한 새끼라고 침을 뱉어 심하게 욕을하고 그자리를 떠난다. 또 한무리 자치기를 하는 아이들이 있다. 한 아이가 낫으로 자치기 도구를 깎고있다. 

 

해가 지고 어둑해 질 무렵까지 자치기에 빠진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가 난다. 저녁밥 먹으라는 아이들이 어머니 소리가 합창을 이루지만 아이들은 한번만 더를 외치며 다시 채를 잡는다. 결국 참다 못한 옥구댁이 달려와 한 아이를 강제로 대려갔다. 나머지 아이들은 다시 지치기를 하고 옥구댁 아들은 엉덩이를 연신 맞으며 질질 끌려갔다. 어둑해진 하늘 위로 굴뚝 연기들이 구름처럼 퍼져나갔다. 노을이 사라지고 문풍지엔 빨간 불빛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마당 한가운데 자리잡은 가마솥에서 애호박과 꽃게를 넣고 끓인 찌게를 커다란 양푼에 담으면서 옥구댁의 사나운 목소리가 연신 집안에 울렸다. 집주인 천명선은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날이면 옥구댁의 목소리는 더욱 칼날 같았다. 매일 바다 부둣가에서 거져 가져오는 자잘한 꽃게에 마당 텃밭에 늘 보이는 애호박을 숭숭썰어 넣고 끓인 찌게에 질린 한 아이가 오늘 또 이거야? 하며 불평이라도 하면 밥 처먹기 싫으면 먹지마 하면서 윽박 질렀다. 과부도 아닌 옥구댁은 제법 사나웠다. (계속)

 

( 일요일 아침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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