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신진련의 詩 3편
오늘을 경매하다
길은 늘 바닷가에서 끊어지고
달리는 발자국들이 모이는 자갈치
새벽은 푸른 가슴을 열고
뭍에 오른 파도 소리를 잠재운다
경매사가 종을 울리는 공판장
지친 트롤선이 마악 부려놓은
생선 비린내를 어루만지는 손가락이 있다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기지개 켜듯 피어나는 꽃잎들
자갈치 꽃이 핀다
손가락이 만든 꽃잎은 바다의 기호
접은 수첩 뒤에서
바다의 주소를 옮겨 적는 동안
뭍에 내린 물 냄새가 옷을 갈아입는다
가장 짜릿한 향기를 위해
손가락 끝에서 제 몸을 터뜨리는 물꽃들
접었다 폈다 새로운 기호로 태어나는 자갈치
꽃봉오리마다 아침이 만개하고 있다
소금꽃 여자
바다를 입고 살았습니다
종일 아가미를 떼느라 휘어진
손가락 마디에는
따개비 같은 상처가 굳은살로 박혀있습니다
몸에 달라붙은 생선비늘 만큼이라도
반짝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속옷을 벗고 비린 몸을 문지르면
손가락 사이로 포말이 일었습니다
씻어도 씻어도 바다를 지울 수는 없습니다
벗어둔 옷에도 짠바람이 스며들었는지
바다가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물기가 빠진 하얀 얼룩을
꽃이라 불러도 될까요
꽃을 피우는 하루를 살았으니
오늘은 낮은 파도를 베고 잘 수 있을까요
젖은 몸 다 마르면
울퉁불퉁한 손가락 마디에도
꽃이 피면 좋겠습니다
잠든 아이 챙기듯
옷에 핀 하얀 꽃을 쓰다듬습니다
창 밖
대평동 선박 수리 조선소
독에 올려 진 아픈 어선 한 척
흔들리지 않는 바닥이 낯선지
식은 땀 흘리듯 녹물을 뱉고 있다
메마를 일 없던 갑판 위로
웅웅 선원들 목소리가 빈병처럼 맴돈다
이름이 지워져가는 저 배도
한 때는 움직이는 섬이었을 것이다
감긴 닻 쇠줄을 붙잡고 있는 불가사리는
누가 남긴 손자국이었는지
바다를 실어 나르느라
몸에 낀 물때도 벗기지 못한 채 늙어버린
아버지처럼
아파서야 겨우 뭍에 올라온
배
깡, 깡 쇠망치 소리에도
곤히 잔다
만선을 꿈꾸는지 코골며 잔다
( 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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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을 나갈때나 일을 마치고 늘 출퇴근버스, 그 셔틀버스를 타면 나는 의례 맨 뒷좌석에 앉는다. 5개가 아닌 4개의 의자로 돼 있어 조금 넓은 것과 약간 높은 위치에 있어 꼭 영화관 의자 그 느낌 같아서 늘 뒷자리를 고집하는 이유는 버스 정면에 있는 대형 TV때문일 것이다. 아주 고급스런 대형 관광버스라서 편안하고 쾌적하다.
그날은 잔업이 없어 오후 3시 30분에 일을 마치고 버스에 올랐다. 자리를 잡고 앉아 켜 놓은 TV를 보는데 가끔씩 즐겨보는 연예인이자 방송인인 최불암 선생님이 진행하는 한국인의 밥상을 막 시작하고 있었다. 그냥 우리가 먹는, 전혀 고급스럽지 않은, 순수한 우리들 삶이 배여 있는.. 옷으로 말하면 몸배같은 구수한 지역 음식들의 방송.. 그래서 좋다.
잠깐 가방을 정리하고 TV에 집중을 하는데.. 고인이 되신 고 박완서 작가의 서재가 보이고.. 그의 활짝 웃는 사진이 보이고 음식은 만두.. 문학인과 관련된 방송? 그래서 더욱 흥미있게 보는데 다음은 객주를 쓴 김주영작가를 만나 그 소박하고 서민적인 음식에 주전자 막걸리까지.. 그들은 58학번이라는것을 그때 알았다. 멋지게 늙는 사람들..
어쩌면 문학은 이땅위에 사람 사는 이야기 그 냄새를 아름다운 표현으로 써 놓은 멋지고 맛깔스런 일기장이 아닌가..
다음으로 넘어가는데.. 부산 자갈치 시장이 나온다. 북적대는 부산의 자갈치 시장.. 그안에 생선장사하는 아주머니.. 자갈치 아지매.. 그런데 시인이라고.. 어? 순간 관심이 치 솟는다. 시문학은 아주 가끔 읽지만(나희덕 시인의 시를 주로 읽음) 그 시인이 시장통에서 읽어주는 詩.. 시장의 삶을 기록한 일기같은 시.. 참 좋았다. 자막의 그 시인의 이름을 기억했다.
TV를 보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그의 휴대폰엔 꽃이나 나무같은 사진은 없고 비린내 나는 생선시장 사진들 뿐이란다.
시인 신진련.. 검색을 해서 읽어보니 열심히 사람사는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아서 좋다. 박완서의 나목, 김주영의 객주가 그렇고 신진련의 오늘을 경매하다가 그래서 좋은 게 아닌가.. 몇편을 검색해서 읽었다. 서점에 가면 그의 첫 시집 오늘을 경매하다를 찾을것이다. 나희덕 시인의 시집과 함께 같이 책장에 있을 그 이미지를 생각하며..
( 연휴 이틀째.. 그 일요일 아침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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